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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 세계 권력 뒤에 놓인 지도

June 5, 2026 · 9 min

1904년 1월 25일 저녁, 켄싱턴의 한 강당에서 쉰세 살의 지리학자 핼퍼드 매킨더가 왕립지리학회의 연단에 올라섰다. 그의 뒤로는 유라시아를 그린 커다란 메르카토르 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린란드가 부풀어 오르고 극지가 무한히 늘어나는, 그 익숙하게 납작해진 투영도였다. 당시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학장이던 매킨더는 자신의 논문에 역사의 지리적 추축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어진 한 시간 동안 그는 대담한 주장을 펼치게 된다. 청중 대부분이 지구본 위에서 위치조차 짚어 내기 어려웠을 아시아 깊숙한 내륙, 바로 그곳이 여러 나라의 운명이 돌아가는 진정한 추축이라는 주장이었다.

그 방 안에 감돌았을 정중한 회의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1904년의 영국이 세계 최강국이었던 까닭은 다름 아닌 바다였지 육지가 아니었다. 영국 해군은 모든 대양을 순찰했고, 무역로는 지구를 휘감았으며, 제국은 배로 하나로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 자국의 지리학자가 이제 해양 강국의 시대가 저물어 갈지 모른다고, 어떤 함대도 닿을 수 없는 대륙을 장악한 자에게 미래가 속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주장은 기억에 남을 만큼 낯설었고, 몇몇 세부에서는 이후 한 세기 동안 논쟁거리가 될 만큼 틀려 있기도 했다. 그 논쟁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지정학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정학이 실제로 다루는 것

더 나아가기 전에 이 단어를 정확히 짚어 두는 편이 좋다. 흔히 느슨하게 쓰이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지리가 국가의 전략적 계산을 어떻게 빚어내는지를 다루는 학문이다. 산맥과 강, 해안선, 거리, 자원의 분포가 전쟁과 동맹과 무역을 설계하는 지도자들을 어떻게 제약하고 유혹하는지를 묻는다. 지정학은 정치지리학이라는 더 넓은 분야의 한 하위 전통이며, 시대를 초월한 단일한 과학이 아니라 1900년 무렵 소수의 사상가들의 작업 속에서 결정화된 특정한 문헌의 묶음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헌은 20세기의 일부 시기 동안 잠들어 있었다. 양차 대전 사이 독일에서 오용되며 그 용어가 해로운 연상을 얻게 된 탓도 한몫했다. 그러던 것이 21세기 초에 들어 힘차게 다시 불려 나왔다. 오늘날 논평가들이 심장부나 주변지를 들먹이거나 유라시아를 둘러싼 다툼을 이야기할 때, 그들은 백 년도 더 전에 세워진 어휘를 빌려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출처가 어디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어휘를 이해하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와 미국에 관한 오늘날의 논평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이 아니라 또렷한 눈으로 읽어 내는 열쇠다.

매킨더와 심장부라는 발상

1904년 매킨더의 핵심 통찰은 지리적이었으며 거의 기하학적이라 할 만했다. 그는 유라시아의 내륙, 곧 동유럽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시베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평원을 바라보다가 그곳이 독특한 성질을 지녔음을 알아차렸다. 그 내륙은 해양 강국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의 강들은 얼어붙은 북극해로 흘러들거나 내륙에 갇힌 바다로 흘러들었기에, 아무리 거대한 함대라도 그 중심부로는 힘을 투사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접근 불가능한 내륙을 심장부라 불렀고, 그곳이 세계사의 전략적 추축이라고 주장했다. 바다로부터 공격받지 않는 동시에 강대국이 필요로 할 곡물과 광물, 인력 같은 천연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논리는 이러했다. 수 세기 동안 영국 같은 해양 강국은 결정적 이점을 누려 왔다. 배는 육로로 움직이는 그 무엇보다도 더 빠르고 더 값싸게 군대와 물자를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가 그 계산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심장부를 철도로 하나로 엮어 낸 대륙 강국이라면, 자국 군대를 마침내 바다에 견줄 만한 속도로 내륙을 가로질러 이동시키면서도 해상 봉쇄에는 끄떡없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 강국이 유라시아를 지배하게 될지 모르며, 그곳을 발판으로 세계를 지배할지 모른다고 매킨더는 경고했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의 그늘 속에서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책을 쓰면서 매킨더는 이 명제를 다듬어, 자신이 쓴 거의 모든 것보다 오래 살아남은 그 기억에 남는 정식으로 만들었다. 그는 지구를 심장부와 그것을 둘러싼 세계도(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이어진 대륙, 곧 지구상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가장 많은 땅덩어리), 그리고 바깥에 놓인 대륙들과 대양들로 나누었다. 그의 명제는 한 시대의 지정학적 불안을 세 줄로 압축했다.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심장부를 호령하고, 심장부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도를 호령하며, 세계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호령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입증된 법칙이라기보다 하나의 경고였지만, 구호가 지닌 그 매혹적인 명료함을 품고 있었다.

해양 강국을 둘러싼 맞은편 주장

매킨더의 육지 중심 이론은 진공 속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불과 십사 년 앞서 대서양 건너편에서 또렷이 제기된 강력한 반대 전통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1890년 미국 해군 장교 앨프리드 세이어 머핸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친 영향을 펴냈고, 이 책은 워싱턴에서 베를린, 도쿄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군 본부의 필독서가 되었다.

머핸의 주장은 훗날 매킨더가 펼칠 주장의 거울상이었다. 영국의 부상을 연구한 그는 바다에 대한 제해권이야말로 강대국을 빚어낸 단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강력한 전투 함대를 건조하고, 해외 급탄 기지와 해군 기지의 사슬을 확보하며, 자국의 상선을 보호하는 나라라면 세계 무역의 흐름을 장악하고 전시에는 경쟁국의 통상을 옥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관점에서 해군의 우위는 번영과 세계적 영향력이 세워지는 토대였다. 머핸의 책은 그 시대의 해군 증강을, 독일과 미국 함대의 팽창을 포함해 직접적으로 빚어냈다. 매킨더가 지도를 보며 육지의 심장을 보았다면, 머핸은 같은 지도를 보며 그 육지를 하나로 묶어 주는 대양의 고속도로를 보았다.

스파이크먼의 수정과 결정적인 주변지

고전 이론가들 가운데 세 번째 인물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등장했고, 사실상 자신의 두 선배가 옳은 지도를 보면서도 엉뚱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니컬러스 스파이크먼은 예일대학교에 몸담은 네덜란드계 미국인 정치학자였으며, 1944년 저서 평화의 지리학에서 매킨더가 여러 지역의 진정한 중요도를 뒤집어 놓았다고 제안했다.

결정적 지대는 접근 불가능한 내륙도, 탁 트인 대양도 아닌 주변지라고 스파이크먼은 주장했다. 주변지란 서유럽에서 시작해 중동을 따라 내려와 남아시아를 휘감고 동아시아의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인구가 빽빽이 들어찬 유라시아의 해안 변두리를 말한다. 이 띠야말로 실제로 사람과 산업, 농업, 항구가 거대하게 집중된 곳이었으며, 육지의 힘과 바다의 힘이 만나 서로 맞부딪히며 갈리는 다툼의 이음매였다. 스파이크먼은 자신의 결론에 맞추어 매킨더의 구호를 고쳐 썼다. 주변지를 장악하는 자가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요점은 지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대륙의 인구학적 무게와 경제적 무게가 그 중심이 아니라 가장자리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 논쟁을 파악하는 가장 분명한 길은 두 명제를 나란히 놓아 보는 것이다. 두 명제는 결론을 빼면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매킨더와 스파이크먼은 같은 유라시아 지도를 읽으면서, 오직 그 위의 어느 지역이 강대국의 결말을 결정하느냐를 두고서만 견해를 달리했다. 안쪽의 심장부인가, 해안의 주변지인가 하는 문제였다. 내륙에서 솟아오르는 대륙의 거인을 두려워한 사람과 해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본 사람 사이의 그 단 하나의 의견 차이가, 이후로 줄곧 전략적 사고를 빚어 왔다.

이론에서 냉전의 지도로

이 발상들은 1945년 이후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면 학문적 호기심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스파이크먼은 1943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평화에 관한 책이 출간되기도 전이었다. 그러나 주변지를 강조한 그의 관점은 전후 시대를 규정한 미국의 전략으로 거의 곧장 흘러들었다. 1947년 외교관 조지 케넌은 포린 어페어스라는 잡지에 "X"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면서 봉쇄 독트린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은 유라시아 대륙 전 둘레를 따라 소련의 팽창을 막아 내는 데 자신을 헌신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유럽의 NATO, 중동과 남아시아를 가로질러 이어지는 조약과 기지의 사슬, 그리고 일본과 한국, 태평양을 붙들어 매는 조약들로 이루어진 냉전 동맹의 지도를 들여다보면, 외교 정책으로 옮겨진 스파이크먼의 주변지를 보고 있는 셈이다. 소련은 매킨더의 심장부 상당 부분에 걸터앉아 있었고, 이에 대한 미국의 답은 그것을 둘러싸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전 지정학의 연대기는 하나의 깔끔한 계보로 이어진다. 1890년 머핸의 해양력에서 시작해 1904년 매킨더의 추축과 1919년 그가 다듬은 정식을 거쳐, 1944년 스파이크먼의 주변지로, 그리고 마침내 1947년 케넌의 봉쇄로 이어지는데, 케넌은 그 학문적 논의를 반세기에 걸친 대전략으로 옮겨 놓았다.

같은 지도, 새로운 이름들

이 낡은 어휘가 배워 둘 만한 까닭은, 그것이 사실 한 번도 완전히 은퇴한 적이 없고 그저 이름표만 바꾸어 달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세기에서 가장 거대한 두 전략적 사업은 백 년 묵은 이 논쟁들의 직접적인 후예로 읽어 낼 수 있다.

2013년 9월과 10월 두 차례의 연설에서, 곧 아스타나와 자카르타에서 시진핑이 발표한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은 유라시아의 내륙과 해안을 함께 꿰매는 철도와 항만, 송유관, 도로의 광범위한 계획이다. 비판자들은 이를 매킨더의 관점으로 곧장 읽어 낸다. 곧 심장부와 세계도를 현대적인 철도로 하나로 묶어, 다른 나라의 해군이 닫아 버릴 수 있는 해상 항로에 의존하는 취약함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옹호자들은 이를 더 소박하게, 가난한 나라들을 위한 개발 금융으로 읽는다. 주목할 만한 점은, 두 해석이 그 의미를 놓고 견해를 달리하면서도 모두 매킨더의 틀 안에서 논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로, 2000년대 후반에 널리 퍼지고 2017년과 다시 2022년 미국의 전략 문서에서 공식화된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는 머핸과 스파이크먼에 명백히 기대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해양 주변지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베링 해협에 이르는 바다와 길목의 사슬을 해군의 존재와 동맹을 통해 붙들어 둔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새로운 대양에 옮겨 놓은 봉쇄의 논리이며, 제해권이 또다시 떠오르는 대륙 강국에 대한 답으로 내세워진 것이다. 이름은 새롭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기하학은 백 년이 넘은 것이다.

하나의 경고: 지도는 곧 주장이다

이 이론들이 그저 지리적 사실을 묘사할 뿐이라는 인상을 남긴다면 그것은 잘못일 것이다. 1980년대 이후로 날카로운 반대 전통이 이 이론들이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비판지정학이라 불리는 흐름과 관련된 학자들, 그 가운데 게로이드 오투아할과 존 애그뉴, 사이먼 댈비 같은 이들은 고전 지정학 자체가 세계를 중립적으로 읽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담론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들의 요점은 미묘하며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하다. 심장부와 주변지는 그 위를 날아간다 한들 땅에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이름표가 아니다. 그것들은 부분적으로 전략적 주장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며, 특정한 정책을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으로 세계를 갈라 놓는 작업이다. 유라시아를 한가운데에 놓고 그 내륙을 위협적인 추축으로 어둑하게 칠한 지도는, 분석의 한 마디가 적히기도 전에 이미 하나의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매킨더나 머핸, 스파이크먼이 모든 것에 대해 틀렸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들의 지도는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 아니라 검토되어야 할 주장으로 읽어야 하며, 지도를 그리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마음속에 한 나라와 하나의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핵심 요점

지리가 국가의 전략적 계산을 어떻게 빚어내는지를 다루는 학문인 지정학은, 같은 유라시아 지도 위에 세워진 세 가지 맞서는 주장 속에서 1900년 무렵 그 고전적 형태를 갖추었다. 곧 제해권이 강대국 경쟁을 결정한다는 1890년 머핸의 주장, 접근 불가능한 내륙 심장부가 역사의 추축이라는 1904년과 1919년 매킨더의 명제(동유럽과 심장부, 세계도, 세계를 잇는 그의 정식에 압축되어 있다), 그리고 결정적 지대는 중심이 아니라 인구가 빽빽한 해안 주변지라고 역설한 1944년 스파이크먼의 수정이 그것이다. 주변지를 강조한 스파이크먼의 관점은 1947년 케넌의 봉쇄 독트린과 소련을 둘러싼 냉전 동맹의 고리로 거의 곧장 흘러들었다. 같은 어휘는 새로운 이름을 달고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매킨더의 관점으로 읽히는 2013년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 그리고 머핸과 스파이크먼의 관점으로 읽히는 2017년과 2022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그러하다. 그렇지만 비판지정학의 전통은, 심장부와 주변지가 땅의 특징인 만큼이나 부분적으로는 전략적 주장이 만들어 낸 발명품이라는 점을 마땅히 일깨워 준다. 그러니 이 지도들은 세계에 대한 중립적 묘사가 아니라 세계에 관한 강력한 주장으로 다루는 편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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